‘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생산할 방법은 없을까?’ 이 생각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면서 현대문명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디지털전환연구부문 남경태 수석연구원은 이 생각을 반도체 검사 과정에 도입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한 번에 한 장의 웨이퍼만 검사할 수 있었던 기존의 시스템에서
한 번에 여러 장의 웨이퍼를 동시에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해 반도체 생산성을 높인 것.
이번에 개발한 고속 멀티 프로빙 웨이퍼 검사 시스템을 만나보자.
(왼쪽부터) 모승기 포스트닥터, 남경태 수석연구원, 추성원 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대량생산되는 제품인 경우 샘플링 검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어느 정도 불량품이 섞여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는 다르다. 항상 몸에 지니는 스마트폰부터 이동할 때 꼭 필요한 자동차나 기차 등에도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불량품이 섞이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검사 공정이다.
지금까지의 반도체 검사 공정을 살펴보면, 한 개의 기기에서 한 장의 웨이퍼만 검사할 수 있고 한 번 검사할 때 보통 2시간에서 10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만약 검사 시간이 2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하루 1대의 검사 장비에서 검사할 수 있는 웨어퍼의 양은 12장에 불과하다. 하루 동안 1,000장의 웨이퍼를 검사해야 한다면 약 84대의 검사 장비가 필요하다. 만약 검사 시간이 더 소요된다면 생산량을 줄이거나 검사 장비를 추가로 구매해야 한다.
“전 세계 산업에서 반도체는 핵심 부품입니다. 앞으로 수요량이 증가하면 증가했지, 지금보다 줄어들진 않을 거예요. 그런데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는 공간과 비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에는 검사 공정도 포함되죠. 저희 연구팀은 이 부분에 주목해 한 번에 여러 장의 웨이퍼를 검사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습니다.”
남경태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남경태 수석연구원이 모승기 포스트닥터, 추성원 연구원과 함께 개발한 ‘고속 멀티 프로빙 웨이퍼 검사 시스템’은 웨이퍼를 검사할 수 있게 척과 웨이퍼를 제외하고 크게 3가지 유닛으로 나뉜다. 프로브 카드를 정렬해주는 ‘얼라이너’, 여러 장의 웨이퍼를 동시에 검사하는 ‘멀티챔버’, 얼라이너에서 멀티챔버로 척과 프로브 카드 그리고 웨이퍼를 결합한 카트리지를 이동시켜주는 ‘이송로봇’이다.
모승기 포스트닥터는 “기존에 회당 1개씩 웨이퍼를 검사할 수 있었던 싱글 프로빙 장치 대신 이번에 개발한 멀티 프로빙 장치를 이용하면 필요 공간과 비용을 함께 줄일 수 있다”며 “여기에 검사 실패율을 줄이는 기능까지 추가하여 반도체 제조 단가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얼라이너.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얼라이너
반도체는 웨이퍼의 집적회로 칩 위에 프로브를 올려 불량 여부를 검사한다. 이때 웨이퍼를 고정시키는 장치가 척이고, 프로브가 부착된 장치가 프로브 카드이다. 그리고 척과 웨이퍼, 프로브 카드를 정밀하게 정렬해주는 장비가 바로 얼라이너이다.
얼라이너에서 중점적으로 봐야 할 기술은 3가지이다. 척에 웨이퍼를 고정시키는 기술, 웨이퍼와 프로브 카드의 수평을 맞춰주는 기술, 부품이 결합된 상태를 이송이 편리하도록 카트리지화한 기술이다.
우선 척에 웨이퍼를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방식을 진공 흡착이 아닌 기계적 결합으로 변경하였다. 검사 중에 일반적으로 나오는 신호와 주변의 잡음이 섞이게 되면 외부의 소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검사를 위해선 주변의 소음을 차단해야 한다. 이를 구분하지 못할 경우 불량이 아닌 것을 불량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때문에 결합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적게 나도록 척과 웨이퍼를 락킹하는 부분을 금속으로 차폐했다.
웨이퍼와 프로브가 접촉됐을 때 수평이 맞지 않으면 불량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웨이퍼와 결합된 척을 프로브 카드에 맞춰 올려주는 길이를 50μm 이상 확보하고 이를 벗어나지 않도록 수평을 유지해 접촉 정밀도를 높였다. 또한 척과 웨이퍼, 프로브 카드가 정확하게 결합될 수 있도록 프로브 카드가 있는 상부와 척과 웨이퍼가 결합된 하부에 각각 카메라를 설치해 라이너 포인트를 확인할 수 있게 설계했다. 이를 통해 불량률은 낮추고, 고가인 부품의 손상을 방지할 수 있다.
이번에 개발한 검사 시스템 명칭에 ‘멀티’가 들어갈 수 있게 해준 부품이 ‘카트리지’이다. 카트리지는 얼라이너에서 결합한 척과 웨이퍼 그리고 프로브 카드 일체를 가리킨다. 또한 카트리지 시스템은 척 조립체와 프로브 카드의 락킹·언락킹 구조로 인해 결합과 분리가 용이해진 것도 특징이다.
얼라이너 내부에 설치된 척(하부)과 이송로봇에 설치된 프로브 카드(상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프로브 카드(위)와 척(아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송로봇과 멀티 챔버
이송로봇은 다수의 카트리지를 멀티 챔버 안에 빠르고 정밀하게 이송하는 장치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카트리지 이송로봇은 100kg 이상 고중량 카트리지를 로봇 핸들러로 이송하는데,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떨림이 발생하면 검사 결과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래서 일정한 속도로 떨림 없이 이송되는지 확인하고 제어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함께 개발했다.
1회 검사 시 다수의 웨이퍼를 동시에 검사할 수 있도록 프로버를 층층이 쌓아 올린 것이 멀티 챔버이다. 현재 개발된 멀티 챔버는 16개의 카트리지를 수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각 챔버마다 검사가 완료된 카트리지는 자동으로 얼라이너로 회수되어 분리 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되어 있어 웨이퍼 검사시 시간당 처리량을 높였다.
이송로봇.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멀티 챔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최근 반도체가 고집적화됨에 따라 검사 장비 또한 그에 발맞춰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고속 멀티 프로빙 웨이퍼 검사 시스템은 7년 전에 기획했던 탓에 현재의 반도체 검사 요구와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1회에 다수의 웨이퍼를 검사한다는 핵심 기술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 상황. 따라서 기업이 원하는 수준으로 프로브 카드만 업그레이드된다면 바로 상용화도 가능하다.
남경태 수석연구원은 “현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특허 출원까지 마치며 원천 기술은 확보가 되어 있다”며 “현재 정부 과제를 통해 상용화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고, 기술개발 연구를 함께할 업체를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고속 멀티 프로빙 웨이퍼 검사 시스템은 75% 이상 외산장비에 의존했던 반도체 웨이퍼 검사장비보다 장점이 많은 만큼 곧 반도체 시장을 선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고 있다.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 프로브 카드나 이송로봇 기술을 함께 발전시켜 상용화까지 이어달리기할 기업을 찾는다는 남경태 수석연구원. 그의 성과로 ‘반도체는 역시 한국’이라는 명성이 세계에 알려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