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플랜트 산업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새로운 성장전략을 모색 중인 가운데 관련 소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소재의 특성 상 물에 직접 닿는 부분이 염분 등 해수 불순물로 인한 부식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바로 녹에 강한 스테인리스이지만 강도가 다소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생기원은 ‘튜브피팅용 저온 진공 침탄기술’을 통해 내구성과 체결력 모두를 만족시키는 스테인리스 소재 개발에 성공, 국산화를 넘어 고 부가가치 기술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튜브피팅용 저온 진공 침탄기술 개발
스테인리스는 Stain(녹)과 Less(없다)의 합성어로, 녹이 쉽게 생기지 않고 가열해도 중금속이나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아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식기부터 가구, 가전제품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는 소재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 석유화학, 정유, 해양 등 플랜트 산업 전반에도 사용된다. 하지만 스테인리스는 녹이 슬지 않는 대신 다소 무르다는 단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금속의 강도를 높일 때에는 고온에서 열처리하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스테인리스 재료 특성 상 500°C 이상의 고온에서는 본래의 녹슬지 않는 특성이 떨어진다. 즉, 기존의 열처리 방법대로라면 스테인리스의 강도는 높일 수 있어도 녹이 슬지 않는 특성은 없어져버리고 마는 것. 높은 강도, 혹은 녹이 슬지 않는 특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튜브피팅’은 튜브나 파이프를 연결할 때 쓰이는 부품으로, 내식성과 체결성 모두를 요하는 중요한 부품이다. 그런데 기존 스테인리스를 사용할 경우, 파이프 안으로 고압가스가 지나갈 때 파이프와 파이프를 연결해주는 튜브피팅이 꽉 잡아주지 못해 가스가 새어나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고온 열처리를 통해 강도를 높이면 튜브피팅의 체결성은 높일 수 있어도 내식성이 떨어져 부식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미국, 일본 등 선진 제조사들은 오래 전부터 이를 개선한 제품을 개발, 전 세계 튜브피팅 부품을 독점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남지역본부 첨단표면공정그룹 김준호 선임연구원팀이 ‘튜브피팅용 저온 진공 침탄기술’을 개발, 해양플랜트 소재부품산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녹슬지 않으면서 강도는 높인 스테인리스
침탄기술이란 쉽게 말해 고온에서 분해된 탄소덩어리들을 철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기술이다. 철의 표면에 탄소가 들어와 더욱 단단해지는데, 사실 오래 전부터 사용돼 온 기술이기도 하다. 연탄이나 숯 안에 부품을 집어넣고 가열시키는 것도 침탄기술의 전통 방식 중 하나다. 점점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스를 사용한 침탄기술이 개발됐는데, 문제는 모두 고온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고온에서 열처리를 할 경우 스테인리스의 강도는 높일 수 있어도 녹슬지 않는 특성은 떨어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낮은 온도에서도 침탄이 가능한 기술 개발이 시급했다. 김준호 선임연구원팀의 ‘튜브피팅용 저온 진공 침탄기술’은 500°C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스테인리스는 500°C 이상이 되면 탄화물이란 석출물을 만든다. 석출물은 일종의 탄소덩어리인데, 원래는 금속 내에 함유되어 있다가 500°C 이상 되면 결정화되어 뭉치게 된다. 이때 스테인리스의 내식성을 유지시켜주는 크롬 등을 당겨내 뭉치는 특성 때문에 원래 크롬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게 되고, 결국 스테인리스의 내식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온’의 기준을 500°C로 잡은 것.
저온에서의 침탄기술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스테인리스의 산화막이다. 스테인리스 표면에는 10나노미터 크기의 얇은 산화막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산화막은 부식도 막지만 침탄도 안 되게 하는 요인이다. 산화막을 없애야만 침탄이 가능하기 때문에, 낮은 온도에서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즉, 낮은 온도에서 산화막을 없애고 침탄층을 입히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인 것이다. 기존에도 저온 침탄기술이 개발됐으나 김준호 선임연구원팀의 기술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스테인리스의 산화막을 없앨 때 기존 공정에서 사용하던 독성가스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반응로 안에 독성가스인 염화수소를 넣어 반응시켰다가 가스를 빼낸 뒤 침탄을 시킨다. 하지만 김준호 선임연구원팀은 염화수소 대신 아세틸린을 사용, 적절한 수소와의 배합, 온도, 노출 시간에 대한 최적화 공정비율을 개발해냈다.
또한 ‘진공’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진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불순물이 없다는 얘기이다. 기존 침탄기술은 아무래도 대기 중 산소가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그 산소들이 침탄층을 형성하는 데 중간중간 들어가게 되어 방해요소가 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김준호 선임연구원팀의 기술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정시간을 약 50%까지 단축시킬 수 있다.
이로써 기존 공정 대비 시간은 절반으로 줄이면서 친환경적으로 침탄이 가능한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표면처리공정 개발로 고 부가가치화 이뤄
‘튜브피팅용 저온 진공 침탄기술’은 지난 2015년 4월, 한 양산소재 기업의 기술자문을 통해 시작됐다. 이후 2016년부터 정부수탁사업과 민간수탁사업, 생기원 내부 사업까지 총 3개의 사업을 통해 과제를 진행 중에 있다.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국내외 논문 4건과 특허출원 6건 등 가시적인 성과도 많다. 무엇보다 해외 제품에 의존해야 했던 고내식 튜브피팅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
기존에 있는 기술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과정 역시 신기술 개발 만큼이나 쉽지 않다. 특히 해외 선진사들 보다 고품질의 제품을 더 빠른 공정으로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계속했다. 그 결과 공정시간을 50% 낮춰 생산성을 높이고 기존 스테인리스 대비 부식성이 100배 이상 향상된 ‘튜브피팅용 저온 진공 침탄기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강도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갖고 있던 녹슬지 않는 특성까지도 대폭 향상된 것이다. 게다가 독성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공정기술로 친환경적이기까지 해 더욱 경쟁력을 갖게 됐다. 이로써 현재 국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해외 제품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개발된 ‘튜브피팅용 저온 진공 침탄기술’은 스테인리스 소재에 한정되어 있다. 김준호 선임연구원은 다양한 강종에 적용할 수 있는 침탄·질화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좀 더 다양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표면처리공정 분야의 고 부가가치화를 향한 또 하나의 도전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