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소개
┃김성덕 소재·부품·장비생산기술추진단장
7월 4일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단행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활용되는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 일본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3개 소재가 대상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 내부에서도 7월 초 분위기는 긴장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만큼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생기원 연구자들 사이에서 생기원이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요.”
김성덕 생기원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 소장은 지난 8월 16일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한달만에 생기원에 신설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산기술 추진단(추진단)’의 단장을 맡았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 소장과 겸직이다. 신설된 추진단을 맡은 뒤 눈코 뜰 사이도 없는 시간을 보낸 김 단장은 추진단을 신설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생기원 내부 목소리와 필요성에 따라 추진단을 맡은 김 단장은 추진단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생기원이라는 방대한 조직이 어떤 분야에 경쟁력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내부 역량을 방대하게 살펴보는 게 아니라 정부가 추려낸 소부장 전략 100대 품목에 포커스를 맞췄다.
“생기원은 전국에 걸쳐 50여개의 조직이 있습니다. 워낙 방대하고 흩어져 있는 셈이지요. 모든 연구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소부장과 관련해서는 생기원의 내부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분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소부장 분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추진단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생기원 내부 연구자들이 어떤 전문분야를 가지고 있는지, 소부장 관련 100대 품목과 관련성이 있는지, 연구개발(R&D) 기획 경험이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현재 추진단은 소부장 대응 관련 생기원 인력들의 전문분야, R&D수행경력, 인프라장비, R&D기획경험 등을 분석·정리한 이른바 ‘매핑(Mapping)’을 완료하여, 내부 역량을 정비하였다.
김 단장은 이번에 매핑을 완료한 추진단의 자료를 토대로 소부장 관련 연구과제를 기획하거나 기술 자문이 필요한 중소중견기업에게 인력 정보 및 인프라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나갈 계획이다. 또 생기원 내부에서 이미 연구된 내용을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어 이를 기업들에게 제공해 우수한 인프라와 인력을 속도감있게 연계해준다는 방침이다.
김 단장의 경력은 다양하다. OCI라는 소재기업에서 10년 동안 연구소에 있다가 생기원에 합류해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정책실에서 10년간 근무했다. 그러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서 생산 기반 프로그램 디렉터(PD)를 5년간 하다가 다시 생기원으로 복귀해 단열재 관련 연구에 착수하려는 시점에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를 맡아달라는 요청에 소장으로 부임했다. 이번에 소부장생산기술추진단이 신설되며 단장까지 겸직하고 있다. 기업과 정책, 프로그램디렉터, 연구까지 다양하게 해본 경험 덕분에 중소중견기업의 니즈(needs)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김 단장은 “중소중견기업들은 결국 원천기술 R&D도 좋지만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을 테스트하고 신뢰성을 분석하는 지원을 원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이런 차원에서 생기원은 좋은 인프라를 갖고 있으며, 이번 추진단 신설로 속도와 타이밍이 중요한 소부장 관련 기술 지원과 신뢰성 구축에 속도감 있게 전방위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Q. 소부장과 관련해 한국이 일본에 종속될 만큼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소부장 분야는 ‘승자 독식’이다. 기업에 재직할 때 체득한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그렇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가 포함된 전자 분야 대기업들은 초일류 제품이 아니고선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초일류 제품을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소재나 부품도 초일류 제품을 써야 한다. 또 전자 분야는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굉장히 짧기 때문에 최고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말 그대로 승자 독식 시장이다.
초일류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면서도 싼값에 제공되는 소재부품을 외면하기 어렵다. 시장의 논리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기까지 이같은 시장의 논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소재부품 산업의 특성도 한몫 했다. 개발해서 직접 제조하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특성을 고려할 때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는 대기업이 직접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 값싸고 질 좋은 기술을 공급받을 수 있는데 굳이 개발할 필요를 못느꼈을 것이다.
Q. 7월 초 일본의 규제 이후 약 4개월이 지났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소재부품 산업 특성을 반영하는 시장의 논리와 불문율을 일본 측이 일방적으로 깨뜨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실제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피해가 크지 않다. 초기에 가졌던 긴장감에 비해 의외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일본이 규제했던 소부장 수급이 안정적으로 되고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들은 일본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필요한 소재부품을 발빠르게 수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대기업이 ‘갑’이고 소재 공급 기업은 ‘을’이다. 일본의 조치는 어찌 보면 을이 갑의 뺨을 때린 격이다. 갑의 입장에서는 발빠르게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중소중견기업을 이끌고 협력하며 소부장 관련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이번 사태로 우리의 약점과 현실을 알게 해준 것이다. 앞서 ‘승자 독식’이라는 말을 쓴 것은 단순히 시장 구조의 특성을 말한 것이다. 이런 특성을 무시한 채 한국 중소중견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감성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통하지 않는다. 속도가 필요한 전자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장의 구조에 따라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이번 사태로 인지하게 됐다. 상생 생태계를 조성하면서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빠르게 달리기만 하다 보니까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했다. 이제야 우리 현실을 알게 해준 것이다. 대기업도 변해야 하고 중소중견기업도 함께 변해야 한다. 그동안 쌓아온 소부장 기술의 역량이 국내에도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에 수요기업(대기업)과 공급기업(중소중견기업), 그리고 생기원 같은 지원 역량을 갖춘 공공 기관이 협력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충분히 이번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Q. 소부장은 기술 자립화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접근전략이 필요한가.
전문가들은 원천기술 연구개발(R&D) 성과 3000여개 중 1~2개 정도만 상용화 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소재 완전 자립화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부장 관련 국가 R&D 틀을 갖추고 긴 안목과 호흡으로 해나간다는 의지를 확고히 가져야 한다.
생기원의 경우 사실 원천기술 개발과 함께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기술 지원 비중도 상당하다. 소재를 집중 연구 개발하는 화학연구원이나 재료연구원 등과는 달리, 우리 원은 소재, 공정, 시스템, 산업기술정책 등을 연구개발하고 기술 지원하는 종합 연구기관이다. 따라서 큰 안목을 가지고 치우침 없이 우리 기업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최근 공공연구기관 간 테스트베드 확충 및 기업지원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생기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번 업무협약은 소부장 관련 기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기업 지원 제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생기원은 중소중견기업 지원을 설립 목적으로 탄생한 기관인 만큼 다양한 테스트베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다른 연구기관과 차별화될 수 있도록 생산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을 개발하고, 시험, 인증까지 전 과정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