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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과 기술문서 노하우 접목, 중소 제조업 돕는다
2020.04.17


▲임채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공정지능연구부문 박사(왼쪽), 채승룡 텍스트리 솔루션사업부 상무(오른쪽).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많은 노력이 들어갔지만 만든 공에 비해 독자에게 덜 읽히는 비운의 책이 있다. 전자제품이나 가구, 자동차를 사면 반드시 따라오는 ‘제품사용설명서’다. 제품의 기능을 충분히 사용하면서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하지만 제품을 막 받아 든 소비자는 보통 설명서를 읽기보다는 제품을 직접 눌러 보고 두드려 보며 ‘몸으로’ 기능을 익힌다. 설명서는 보통 서랍 안에 깊숙이 파묻힌다.



하지만 제품사용설명서는 제작에 많은 품이 들어가는 전문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다. ‘기술문서’라는 콘텐츠의 하나로 사용설명서 외에 제조, 수리와 관련된 매뉴얼이 바로 기술문서에 속한다. 기술문서는 필수적으로 그림이 들어가고 고객이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쓰고 디자인하는 전문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처럼 전 세계로 수출되는 제품의 설명서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야 한다. 제품은 특성상 자주 성능이 개선되는데, 작은 부분이라도 변경되면 모든 설명서를 다 고쳐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과정을 체계적이며 효율적으로 관리해 한 번의 업데이트만으로 모든 매뉴얼이 항상 최신 상태로 배포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할 필요가 생겨났다.



기술문서 전문제작회사 라티스글로벌은 2002년 게임 매뉴얼에서 시작해서 중소 제조기업을 위한 다양한 기술문서 솔루션을 제공해 온 이 분야의 선도적 기업이다. 스마트폰, 공기청정기, 정수기 등 다양한 제품은 물론 중소기업의 제조기술 관련 문서를 제작, 관리, 배포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2018년에는 아예 자회사 텍스트리를 따로 설립해 본격적으로 엔지니어링 분야 솔루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기술문서의 진화 끝에서 증강현실(AR)을 만나다




라티스글로벌과 텍스트리는 이 분야 선도자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술문서를 활용할 보다 효율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을 고민하다가 AR에 눈을 돌렸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겨도 매뉴얼을 먼저 안 보고 먼저 제품을 두드려보는 등 감성적으로 접근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글을 보지요. 이런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매뉴얼에 접근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스마트폰으로 마크를 읽어 제품이 3D로 나타난다. 세부 정보나 부품 교체 정보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채승룡 텍스트리 솔루션사업부 상무는 최근 몇 년 동안 했던 고민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보다 사람들이 잘 접근할 방법을 찾아 기술문서의 트렌드는 계속 바뀌어 왔다”며 처음에는 책이었지만 곧 전자문서로 발전했고, 최근에는 동영상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동영상 매뉴얼은 최근 널리 활용되고 인기가 많다. 특히 제품 제조나 수리 등에는 영상이 매우 직관적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채 상무는 “영상은 용량이 크고 필요한 부분을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며, 무엇보다 부품 등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수시로 수십 기가 용량의 영상을 그때그때 다시 만들어야 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AR은 그 대안으로 탄생했다. 먼저 수리하거나 제작하는 부품의 입체 그래픽을 실제 제품 영상에 얹을 수 있어 직관적이다. 상호작용이 가능해 제조나 수리 방법을 훨씬 잘 따라할 수 있다. 채 상무는 “예를 들어 정수기 필터를 간다고 하면 실제 정수기 영상 위에 그래픽을 얹어 어떤 부분을 어떤 방법으로 열지, 필터를 어떻게 넣을지 등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분야에 일찌감치 뛰어든 라티스글로벌과 텍스트리는 AR 분야 원천기술 덕분에 여러 가지 경쟁력 있는 AR 콘텐츠 제작 기술을 확보했다. 실제 제품의 외곽선 정보와 위치정보 등을 이용해 제품을 비추면 3차원(3D) 영상이 나오게 하는 고급 기술과 제품에 마크를 달아서 스마트폰이나 구글글래스 같은 AR 기기로 마크를 확인하면 AR 이미지가 보이게 하는 방식의 비용이 덜 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제조 현장에 필요한 복잡한 기기의 제조 또는 수리 방법을 AR을 이용해 정교하게 묘사하고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기업의 요구를 맞추기 위한 현장 정보도 부족했다. 현장에서는 복잡한 기기에서 나사 하나 푸는 방법까지 상세히 묘사하고 설명해야 한다. 채 상무는 “임 박사 경험과 기술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AR과 생기원의 노하우가 만나 중소기업 지원 기술 내놔



임 박사는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중소제조업에 기술 지식 데이터베이스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중소제조업에는 분명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한 자신들만의 노하우가 있다. 이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전자문서로 만들고 관리할 것인지 고민하던 차에 라티스글로벌과 텍스트리의 기술에 관심을 가졌다. 임 박사는 “AR를 이 분야에 적용한 것도 새로운 시도였고 세계적으로도 이런 솔루션은 나온 적이 없어서 해볼만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우선 제조 현장에서는 현장 사용자가 정보에 빨리 접근하고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금속제품을 만드는 주조나 사출 분야에 적용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주조는 고온에 녹인 금속 재료를 거푸집이라고 하는 속이 빈 틀에 넣고 굳히는 제조법이다. 거푸집은 주로 나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크기가 크고 개수도 많다. 임 박사는 “하나의 형상을 만들려면 나무 거푸집(목형)이 최소 10여 개, 많을 땐 20여 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많은 목형을 순서대로 조립해야 제품 하나가 완성된다. 그만큼 제조 과정도 복잡하지만 크고 많은 목형을 관리하는 일도 어렵다. 



임 박사가 금형제조 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임 박사는 “목형만 창고 안에 건물 2~3층 높이로 쌓여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 중에서도 체계적으로 목형을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보통은 라벨을 붙여 놓는 정도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고 특별히 신경을 기울이는 회사라고 해도 목형의 캐드 파일과 전자문서를 갖춘 수준이다.



임 박사와 텍스트리는 가장 기본적인 이들 목형을 순서대로 조립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여기에 AR 데이터를 손쉽게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해 덧붙였다. 실제 제품을 이용해 AR을 구현하려면 실제 제품 정보를 영상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존에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영상을 제작했지만 이번 개발한 시스템은 목형의 캐드 데이터만 입력하면 데이터를 경량화해 AR로 볼 수 있도록 자동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여기에 텍스트리가 원래 전문성을 지니던 문서관리 기술을 덧붙여 중소기업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벼우면서 효율 좋은 관리 시스템도 개발했다. 캐드 데이터로 만든 경량화 AR 기술에 금형 2D 설계도나 작업지시서 등 정보를 볼 수 있게 정보관리를 더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재고가 얼마인지 등을 AR 콘텐츠와 함께 볼 수 있다. 




임 박사가 텍스트리와의 협업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최근에는 스마트공장이 화두다. 많은 시스템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임 박사는 "시스템기업은 현장을 모른다"며 "중소제조업이 구축하려면 비용이 저렴해야 하고 사용이 편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박사와 채 상무는 "아직 이 분야 사례도 없고 적용 노력도 없는데, 우리의 시도가 좋은 실증 사례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박사와 라티스글로벌, 텍스트리는 서로의 장점으로 상대의 부족한 점을 채우며 상생했다. 텍스트리는 매뉴얼을 만드는 기업으로서 중소기업 현장의 상황을 잘 몰랐다. 채 상무는 “기술문서가 AR 문서로 만들어지려면 고객의 필요를 알아야 한다”며 “임 박사를 통해 기술을 현장에 접목시키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공정 전문가로서 현장의 문제를 어떻게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라티스글로벌 및 텍스트리를 통해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