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ECH STORY
섬유 3.0 시대가 열리고 있다. 1.0 시대가 착용성에 집중한 합성섬유 중심이었다면 2.0 시대는 기능에 역점을 뒀다. 두 시대를 지나 열리고 있는 3.0 시대는 ‘지능형 전자섬유’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제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몸의 상태와 위치를 파악하고,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물이나 사람과 연결되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섬유와 전자의 만남이 일구는 새로운 영역, 임대영 그룹장으로부터 전망을 들어봤다.
■ 스마트텍스트로닉스,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는 스마트 기술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소비자 가전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는 인공지능이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았는지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아마존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렉사’는 자동차와 냉장고, TV 등에 접목되면서 가전제품의 진화를 보여줬다.
이 중 참가자들의 이목을 끈 섹션은 ‘슬립테크관’이었다. 이름 그대로 숙면을 위한 기술을 선보인 이 코너에서, ‘슬립 넘버 360’은 이번 CES 2017 전시회의 이노베이션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는 스마트 침대분야의 선두주자인 슬립IQ가 만든 디바이스이다. 사용자가 수면 시 코를 골 경우 센서가 이를 감지해 공기펌프를 작동시켜 머리 기울기를 7℃ 가량 올려준다. 상체가 살짝 올라가면 코고는 증상이 완화되는 것에 착안해 개발한 기술이다. 또한 발 부분을 따뜻하게 유지시켜 숙면을 위한 최적의 편안함까지 제공한다.
반대로 침실 온도가 너무 높아질 때를 대비한 ‘쿨링 매트리스’ 기능도 주목받았다. 해당 기능을 선보인 ‘크라요 슬립 퍼포먼스 시스템(Kryo Sleep Performance System)’은 수면에 최적으로 알려진 15.6~20℃에 맞춰 매트리스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스마트 시대가 펼쳐지면서 다양한 디바이스가 만들어지고 또 실생활에 적용되고 있다. 손에 들고 다니던 디바이스는 점차 생활 가까이 들어와 시계와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 형태로 만들어졌고, 침대와 옷 등에까지 침투했다. 인간의 행동과 사고, 습관 패턴을 파악하려는 수요가 해당 기술을 가속화 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마트텍스트로닉스가 있다.
인체 가장 가까이에서 작동하는 스마트텍스트로닉스 기술.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터뷰]
똑똑한 섬유가 만드는 스마트한 미래
임대영 휴먼융합기술그룹장
Q. 스마트텍스트로닉스(Smart Textronics,지능형전자섬유) 연구가 활발합니다. 용어가 조금 생소한데요.
섬유에 전자 디바이스가 들어간 제품을 ‘스마트텍스트로닉스’라고 합니다. 섬유를 뜻하는 'Textiles'과 전자를 뜻하는 'Electronics'의 합성어입니다. 본질은 전자 디바이스인데, 섬유제품처럼 입거나 착용할 수 있는 것이죠. 전자 디바이스가 적용됐다는 건 결국 ‘센서’를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난방기기, 방을 환히 밝혀주는 조명기기 등의 역할이 섬유에 적용됐다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조명이나 난방기기는 딱딱하잖아?’ 하고 반문하실 거예요. 맞습니다. 이 때문에 유연한 디바이스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사용자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부드러운 섬유로 만들기 위한 것이죠.
Q. 웨어러블 컴퓨터가 생각나는데요. 스마트텍스트로닉스와 웨어러블 컴퓨터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과거 ‘웨어러블 컴퓨터’라고 칭했던 것이 크게 두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하나는 안경과 시계,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로, 또 다른 하나는 의복 형태로요. 액세서리 분야는 시장이 일찍 열리긴 했지만 파급효과가 기대만큼 크지는 않았습니다. 점점 손목시계를 사용하지 않는 시대에 스마트워치가 대중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거죠. 그 다음 시장이 스마트텍스트로닉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디바이스를 옷 형태로 사용하면 사람의 생체정보를 실생활에서 이질감 없이 취득할 수 있어 생활 속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거죠.
Q. 이질감 없는 정보 수집. 최근 스마트텍스트로닉스 연구가 활발해지는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 기술은 아무래도 미국과 유럽이 앞서 있습니다. 미국은 소재 연구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유럽은 EU프로젝트를 만들며 ‘개인 보호복’ 시장에서 앞서가고 있습니다. 소방복이나 작업복 등 신체를 보호하는 옷의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여기에 센서를 도입해 소방관 및 작업자들의 신체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거죠. 실용화되면 현장에 투입된 작업자들에게 위험이 발생했을 경우 빠르게 구조할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국내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까지 와있나요?
국내에서도 연구는 빨리 시작했지만 제품화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잘 하는 것은 재료 연구, 그리고 완제품 제작입니다. 즉 스마트텍스트로닉스라는 소재를 개발하거나 이것을 활용한 의복을 재봉하는 일이죠. 하지만 이 두 과정 사이에 꼭 필요한 원단을 만드는 제직기술은 부재한 상황입니다. 더 이상 제직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독일은 아직도 이 연구를 합니다. 섬유 제직기와 편직기술은 여전히 독일이 강세에요. 독일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죠. 스마트텍스트로닉스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직물이 있어야 하는데, 주의해야 할 것은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던 직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발열 기능과 발광 기능이 들어있는 새로운 직물이죠. 따라서 새로운 원단을 디자인 할 디자이너, 인간공학 설계자, 전문 마케터 등이 필요합니다.
Q. 세계 시장은 어떤가요?
스마트테크트로닉스 시장은 2020년 47억 달러, 2024년에는 93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박람회에서 급성장을 실감했습니다. 스마트텍스트로닉스 관련 제품을 소개하는 업체가 상당히 많고, 그 규모도 컸습니다. 시계나 안경 등 액세서리 쪽은 사양길에 있고, 의류 쪽은 크게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제품 중 하나는 ‘슬립 앤 리커버리(Sleep & Recovery)’였습니다. 베개 안에 디바이스를 넣은 것인데, 한 번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풀리도록 한 기술이었죠. ‘스마트텍스트로닉스’ 시대는 이미 와 있고, 앞으로는 이 분야에서 어떻게 경쟁할 것이고 무엇을 내세울 것인지가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Q. 생기원은 지난해 독일 아헨공대 ITA연구소와 한·독공동연구소를 개소한 데 이어, 올해 9월에는 안산에 ‘스마트텍스트로닉스센터’를 개소했습니다. 독일의 연구소는 국내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미래 시장 창출을 위한 기획연구비를 지원 받은 적이 있었는데,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독일로 갔어요. 두 기관을 찾았는데, 그 중 한 곳이 ITA 연구소였습니다. 굉장히 다이내믹하고 활동적인 기관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이디어부터 제품개발까지 함께 연구할 수 있겠다 싶었죠. ITA연구소도 무척 호의적이어서, 한·독공동연구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생산시스템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독일은 여전히 제직기를 개발하고 있어요. 제조업 분야에서는 세계가 인정하는 강국이죠. 반면 국내의 경우 자동차는 만들지만 제직기는 아무도 취급 안합니다. 기업에서 제직기 사업 한다고 하면 은행 대출도 어려울 정도니까요. 한국이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모델로 강소기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데, 아직은 그 숫자가 독일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제가 경험한 독일은 세계적인 기술 트렌드를 읽어내고 선도하지만,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단단한 기반을 발판삼아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나라입니다.
Q. 스마트텍스트로닉스센터는 현재 어떤 R&D에 주력하고 있습니까?
소재 및 재료 연구보다는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인지 정한 후, 디자인을 연구하고 소비자 만족도와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알아보는 방식이죠. 또 필요한 소자와 재료는 무엇인지 거꾸로 찾아가려고 합니다. 소재를 만드는 분들과도 협업을 하지만, 스마트 의류라는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와도 협업을 합니다.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의복을 취급하는 방식이 옷마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티셔츠만 입었을 때, 그 위에 재킷을 걸쳤을 때 등 필요한 기술이 다 다르거든요.
Q. 센터 운영의 장·단기 목표는 무엇입니까?
국내에 관련 생산기반이 구축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기존에 편직물이나 제직물을 만들던 회사가 스마트텍스트로닉스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양국 간 교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려고 합니다. 5년 후에는 이 분야를 주업으로 삼는 기업이 생겨날 수 있도록 선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