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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사망 막는 과학기술은
2019.08.14



1995년 7월 14일 오후 4시. 미국 시카고 로즈랜드 지역 911응급구조센터에 마거릿 오티즈(당시 45세)라는 유치원 선생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구조요청을 해왔다. 아이 2명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급구조대원이 도착했을 때 아이들의 체온은 41도를 훌쩍 넘었고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서울보다 위도상 북쪽에 위치해 있지만 전날부터 시카고 전역의 낮 기온은 41℃, 체감온도는 48℃까지 치솟는 가마솥 더위가 시작됐다. 이 때문에 오티즈 선생은 아이들을 데리고 냉방시설이 잘된 영화관을 찾았는데 더위에 정신이 없어 미처 아이들을 모두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차에 아이들을 두고 내린 게 화근이었다. 결국 오티즈 선생은 아동보호 소홀로 인한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1995년 7월 ‘시카고 폭염’의 비극적인 한 모습이다.


당시 시카고는 7월 13일부터 닷새 동안 40℃를 넘는 살인적 폭염이 지속됐고 이후 40℃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7월 말까지 40℃에 육박하는 더위가 계속됐다. 결국 7월 한 달 동안 시카고에서만 폭염으로 700여 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시카고 기상청 예보책임관이었던 폴 데일리는 “폭염을 예보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살인적일지는 몰랐다”라며 “더위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실려나오는 모습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라며 회상하기도 했다.


1907년 한국 근대기상관측 이후 가장 더웠다는 지난해 여름보다는 덜하지만 올해도 7월 말 장마가 끝나자마자 낮 기온이 35에 육박하는 가마솥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는 역대 최고 수준인 4526명, 사망자도 48명에 이르렀다. 2018년 이전 가장 더웠다는 2016년과 비교했을 때도 환자 발생률은 물론 사망자 숫자도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올해도 8월 8일 기준 한반도를 덮친 폭염일수는 9.3일에 불과하지만 온열질환자는 1200명, 그 중 6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폭염은 태풍이나 집중호우, 혹한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할 정도로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후현상이다.



지난 7월 25일 벨기에 클라이네브로겔이라는 곳의 기온이 40.6까지 올라가면서 1833년 기상관측 이래 186년 만에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독일 니더작센주 링겐은 독일 기상관측 이래 최고기온인 42.6, 본도 40.7까지 올라갔고 프랑스 파리는 이집트 카이로보다 더운 42.6를 기록하면서 역시 프랑스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운 날씨로 기록됐다.


실제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산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는 올해 7월 기상자료를 분석한 결과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근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7월로 기록됐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지금까지 가장 더웠던 7월은 전 지구적으로 엘니뇨가 발생했던 2016년이었지만 올 7월은 그 때보다 더 높다는 설명이었다. 지난 7월은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7월 평균 기온보다 0.56도 높았고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해서는 1.2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매년 여름 발생하는 폭염은 대기흐름으로 인해 계절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2000년대 이후 나타나는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혹한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와 파리기후협약은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1.5도 이하로 막도록 각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행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과학자들이 지금처럼 지구온도가 상승해 여름철 폭염이 지속되면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늘어날지 분석했다. 중국 기상청, 국립질병통제예방센터, 난징 정보과학기술대 등과 폴란드 농업·산림환경연구소, 영국 에딘버러대, 독일 에버하르트 칼스대 공동연구팀은 중국 27개 도시를 대상으로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상승했을 때와 2도 상승했을 때 사망률을 예측해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7일자에 발표했다.


▲폴리디메틸시록산이라는 물질과 알루미늄 코팅을 통해 만든 빌딩냉각장치. 미국버팔로대

연구팀은 2100년까지 온도 상승에 따라 온열질환 관련 사망자수를 예측했다. 예측 결과 연구팀은 1.5도 상승할 경우 온열질환 사망자는 100만 명당 104~130명에 이르고 2도 상승할 경우 100만 명당 137~17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온도 상승에 따른 인간의 적응력을 감안하더라도 1.5도 상승시 인구 100만 명당 49~67명, 2도 상승시에는 100만 명당 59~81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상승하면 1.5도 상승했을 때보다 매년 최소 2만 9000여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하는 것으로 예측됐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그렇다면 점점 무더워지는 날씨에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문제는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고 견뎌내기 위해 냉방시설을 가동하게 되면 그만큼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는 다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켜 폭염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 위스콘신메디슨대,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 중국 항저우전자과기대 공동연구팀이 기후변화 관련 국제학술지 ‘네이처 서스테이너빌러티’(Nature Sustainability) 6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실리콘 오일로 알려진 폴리디메틸시록산(polydimethylsiloxane)이라는 물질로 알루미늄 필름을 코팅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냉각판을 만들었다. 알루미늄은 빛을 반사하고 폴리머는 주변 공기의 열을 흡수해 제거한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전기나 배터리 없이 작동이 가능한 일종의 수동냉각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폴리머-금속판을 이용해 높이 45㎝, 폭 25㎝의 박스를 만든 뒤 박스 안 온도와 외부 온도를 비교한 결과 박스 안의 온도가 외부보다 6도 가량 낮은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저우 류 뉴욕주립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이 기술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상업용 재료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열을 차단하고 냉각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특히 고층건물이 많은 도시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으로 예상되며 여름철 냉방에 활용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 유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