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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주말·명절에 나타나는 유령 정체 현상
2019.09.10


명절 연휴나 주말에는 어김없이 도로에 극심한 정체 현상이 나타난다. ⓒ픽사베이



 

올해 민족 대명절 한가위연휴는 여느 때보다 열흘 정도 빠른 912일부터 시작됐다. 열차나 고속버스 귀성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차를 갖고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과는 달리 도로 상황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전쟁통이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8년 추석 당일 기준 6072525대의 차량이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전국 고속도로의 총 길이는 4767(민자노선 포함)이다. 한정된 도로에 많은 차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어찌 보면 막히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설과 추석 같은 명절뿐만 아니라 주말이나 징검다리 연휴가 끼어있을 때도 어김없이 도로는 주차장이 돼버리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차와 조금만 틈이 벌어지면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그 사이를 끼어드는 얌체 차량까지 나타나면 짜증이 나고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까지 있다.


 


▲앞뒤 꽉 막힌 도로 정체 현상 ⓒ픽사베이



우리는 흔히 운전 중에 이런 경험들을 하게 된다. 내 차가 있는 차로보다 옆 차로에 있는 차들이 잘 달리는 것 같아서 차선을 바꾸면 원래 있던 차로들이 더 잘 빠지는 경우나, 고속도로를 한참 쌩쌩 달리다가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꽉 막혀 도무지 움직이지 않다가 다시 뻥 뚫리는 그런 경험들 말이다.

 


또 재미있는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매년 좀 더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 도로를 새로 뚫거나 차로를 확장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교통정체 없는 도로는 없을까.

 


교통공학자와 물리학자, 수학자들도 교통체증에 대한 비밀을 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느린 것이 가장 빠른 것이라는 결론뿐이다. 도로가 막힌다고 이리저리 차로를 바꿔가면서 운전하는 것이 차선을 유지하면서 가는 것과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다. 뭔가 대단한 해법이나 비밀을 기대한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맥 빠진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대와 미국 스탠퍼드대 공동연구팀은 몇 년 전 교통 정체가 유독 심한 2차로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많은 운전자들이 자신이 차로를 바꿔 다른 차들을 앞서간 것보다 옆 차로에서 자기를 앞질러간 차들이 더 많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운전자들이 꽉 막힌 도로에서는 소통이 원활할 때보다 옆 차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운전자가 차선을 바꾸며 다른 차를 추월할 때는 속도를 순간적으로 높여야 하기 때문에 몇 대의 차를 추월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반면 다른 차가 내 차를 추월할 때는 상대편의 차 속도가 더 빠르고 시야의 앞쪽에 있기 때문에 내 차는 다른 차들보다 더 느리고 뒤쳐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원리이다.




▲ 운전자들의 심리와 인식이 유령 정체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픽사베이



여기에 남보다 손해보고는 참을 수 없다는 손실혐오심리까지 더해진다. 손실혐오는 심리학과 경제학을 결합시킨 행동경제학을 창시해 2002년 심리학자로는 처음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 대니얼 카네만 교수가 만든 개념이다. 손실혐오 심리는 이득과 손실이 동일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 본 것에 대해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 때문에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다보면 교통체증은 더욱 심해지고 없던 교통체증이 생기기도 한다. 한정된 도로에 많은 차들이 밀려들면서 생기는 것이 교통체증이기도 하지만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에 깜박이도 켜지 않고 차선을 종횡무진 바꾸는 미꾸라지 같은 차들 때문에 도로는 순식간에 거대한 주차장처럼 돼 버리는 것이다.


 

손실혐오 심리로 인한 차선변경과 끼어들기는 뻥 뚫린 도로를 갑자기 막히게 만드는 유령 정체현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독일 뒤스부르크 에센대 물리학과, 캐나다 앨버타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공동연구팀이 밝혀내기도 했다. 뻥 뚫린 도로에서 차로를 자주 바꾸는 몇몇 차 때문에 뒤따르는 자동차들이 영향을 받아 교통정체가 발생하는 것이 유령 정체 현상인데 연구팀은 마치 폭탄의 연쇄반응과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단 폭탄의 기폭장치가 작동되면 멈추기 어려운 것처럼 교통체증도 일단 시작되면 없애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정체가 없는 2차선 도로에서 1차로를 달리던 자동차 A2차로로 갑자기 차로를 바꾸면 2차로를 달리던 자동차 B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게 된다. 그러면 B 뒤에 있던 C도 속도를 줄이게 되는 것이다. 이 때 C가 앞서가기 위해 1차선으로 갑자기 차로변경을 하게 되면 1차로를 달리던 D가 속도를 줄이게 된다. 차로변경과 감속이 반복되는 과정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해당 도로는 엄청난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원리이다.




▲어딜 가나 뻥 뚫린, 정체 없는 교통이면 얼마나 좋을까  ⓒ픽사베이



도로는 자동차를 위한 일종의 서비스 상품이다. 사용자의 태도에 따라 서비스의 품질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결국 도로의 질은 운전자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조금 더 빨리 가보겠다고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는 것은 결국 도로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주요 원인이자 사고 위험성까지 높일 수 있는 행위이다. 모두가 기분 좋은 장거리 운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경우를 빼놓고는 차선변경을 최소화하는 것이 어떨까.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