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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가을 10월, 가을의 과학
2019.10.15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中


가을이 되면 연배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고은 시인의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인 노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의 가사가 떠오른다.


 

또 10월 마지막 날 노래방에서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10월의 마지막 밤을 /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 우리는 헤어졌지요”라는 가사를 가진 1980년대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많이 불려진다.



가을에 센티멘탈해지는 사람들의 감성을 제대로 공략함으로써 마치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처럼 가을이 되면 이들 노래를 반사적으로 떠올리 게 만든다.



최근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있지만 계절적으로 10월은 가을 한가운데를 훨씬 지난 때이고 겨울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11월을 목전에 둔 시기이다. 울긋불긋 낙엽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면서 ‘가을 타는’ 남자, ‘추남(秋男)’들은 바바리 코트자락과 함께 낙엽들을 휘날리고 싶어한다.



가을만 되면 코트자락 휘날리는 남자들, 해법은?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것은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종의 계절성 기분 장애 증상이다. 일반적으로 기분 변화는 감정이 풍부한 여성들이 더 많이 느끼지만 가을에는 유독 남성들이 우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 무기력하고 우울한 느낌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갑자기 잠이 많아진다거나 평소와 달리 사탕이나 초콜릿처럼 달짝지근한 음식들을 자주 찾는다면 계절성 기분장애로 봐야 한다.





가을이 되면 여름보다 일조량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데 이 때문에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분비되던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 분비량도 확 줄어들게 된다.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세로토닌은 햇볕을 쬘 때 체내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세로토닌 분비도 줄어들어 우울한 느낌이 강해진다.



뇌의 송과선에서 만들어져 분비되는 멜라토닌은 밤낮의 길이, 계절에 따른 일조시간 변화 같은 광주기를 감지해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면서 이유 없이 밤중에 깨거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생체리듬이 깨져 우울한 감정은 더 심해진다. 여기에 햇볕을 쬐면 몸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비타민D의 양도 줄어들어 남성호르몬 분비도 전반적으로 감소한다.



멜라토닌, 세로토닌, 남성호르몬 감소는 여성의 신체리듬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이들 호르몬 3인방 때문에 가을철 남자들의 신체리듬은 그야말로 널을 뛰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을 타는 남자들이 계절성 기분장애를 없애기 위해 술자리를 갖고 옛사랑을 곱씹거나 노래방에서 ‘잊혀진 계절’이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를 목 놓아 불러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을 타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실내에만 있지 말고 점심시간 같은 때 짬을 내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는 등의 방법으로 햇볕 쬐는 시간을 늘려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남성호르몬 분비를 늘리는 것이 좋다고 과학자들은 조언한다.



가을의 백미, 울긋불긋 단풍


기상청은 지난달 27일 강원도 설악산의 첫 단풍이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와 같은 날짜이고 평년과도 같은 시기에 단풍이 시작됐다.



단풍은 일반적으로 하루 최저기온이 5°C 이하로 떨어지면 물들기 시작하는데 보통 9월 중순 일평균 최저기온에 따라 단풍 시작시점이 좌우된다. 올해 강원도 속초 지역 9월 중순 일평균 최저기온은 16.6°C로 평년 16.4°C와 비슷했고 설악산도 8.4°C로 지난해 8.7°C와 비슷했다.





보통 첫 단풍은 산 전체 중 정상으로부터 20% 가랑 물들었을 때를 말하고 산 전체의 80%가 물들었을 때 단풍의 절정이라고 부른다. 단풍의 절정은 보통 단풍이 시작된 뒤 2주 정도가 지난 때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올해 설악산 단풍의 절정은 10월 중순경이라고 할 수 있다. 중부지방의 경우는 10월 20일까지, 남부지방은 10월 11~24일 사이에 첫 단풍이 나타난다고 하니 11월 초까지 단풍의 절정을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2009~2018년 최근 10년간 9~10월 평 균 기온이 1990년대에 비해 0.5°C 상승하면서 첫 단풍과 단풍 절정시기도 늦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1990년대에 비해 최근 10년간 첫 단풍 시기는 북한산 1일, 내장산은 3일 늦어지고 단풍 절정기는 지리산은 3일, 월악산과 무등산은 4일이 늦어졌다.


가을에 온 산하를 물들이는 단풍은 식물이 겨울을 대비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무는 햇빛과 공기 중 이산화탄소, 뿌리에서 빨아들이는 수분을 통해 영양분을 얻는데 가을이 되면 이 모든 것이 부족해지기 시작한다. 영양분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를 줄여 다음해에도 살아남기 위해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영양분 공급의 중요한 과정인 광합성이 멈추면서 잎에서 엽록소인 녹색의 클로로필이 파괴된다. 이렇게 되면 봄과 여름철 클로로필에 눌려 보이지 않던 다른 색소들인 붉은색 계열 안토시아닌, 노란색 계열 카로티노이드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단풍이다.



일교차가 크고 건조한 날씨가 오래될수록 엽록소 분해가 빨라지기 때문에 단풍은 아름답게 물들게 된다. 실제로 단풍이 평지보다 산, 강수량이 많은 곳보다 적은 곳에서 더 아름답게 나타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을만 되면 계절성 기분장애를 느끼는 남성들이라면 이번 주말에라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근처 산으로 가서 서서히 물들고 있는 단풍과 깊어지는 가을을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처방전이 될 것이다.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 edmondy@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