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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미생물이 뭐길래?
2020.03.17


▲장내미생물은 최근 생물학, 의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고 있는 연구 분야이다. ⓒ네이처



평소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요즘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용어는 ‘장내미생물’이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은 장내미생물이라고 하면 ‘유산균 음료’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장내미생물은 비만, 대장암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암, 치매,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 등 수많은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받으면서 생물학과 의학분야에서는 관련 연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류학이나 사회학 연구에도 직간접적으로 활용되면서 장내미생물 전성시대를 맞았다.



인체마이크로바이옴 중 가장 주목받는 장내미생물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총(叢)을 의미하는 ‘마이크로바이오타’와 유전체를 의미하는 ‘게놈’이 합쳐져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인간, 동식물, 토양, 바다, 호수, 대기 등 모든 생태환경에서 서식하거나 공존하는 미생물과 유전정보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제2의 게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생물 연구에 있어 기존에는 개별 미생물 분석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유전자 증폭, 염기서열 분석 같은 생명공학 기술 발전과 함께 이제는 인체, 동식물, 환경과 미생물 간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활발하다.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된 것은 2006년 미국 워싱턴대 제프리 고든 교수가 비만 쥐의 분변와 마른 쥐의 분변을 무균 쥐에 각각 주입한 결과 비만 쥐의 분변을 주입받은 생쥐가 쉽게 비만해진다는 사실을 ‘네이처’에 발표하면서이다. 고든 교수의 연구결과 발표 이후 장내미생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에 있는 미생물 수는 인간 세포 수보다 비슷하거나 약간 많은 39조개로 대부분 대장이나 소장 등 소화기관에 집중돼 있다. 이들 장내 미생물을 모두 모아놓더라도 체중의 1~3%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분해할 수 없는 영양소를 분해해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본적인 역할 이외에도 면역계 질환, 퇴행성 뇌질환, 우울증, 양극성장애 등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신경정신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속속 공개되면서 장내 미생물과 건강에 대한 연구는 가속화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장내 미생물의 기능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 장내 미생물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고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장내미생물, 노화까지 막는다



폴 오툴 아일랜드 코크대 미생물학부 교수 주도로 아일랜드,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폴란드, 핀란드, 러시아 8개국 20개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팀은 지중해식 식사를 1년 이상 하게 되면 유익한 장내 미생물의 종류와 숫자가 늘어나고 체내 염증지수가 줄어들어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거트’ 2월 18일자에 발표했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 생선 등으로 구성된 지중해식 식단은 유익한 장내미생물을 늘려 건강은 물론 노화도 늦출 수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의대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남부 등 지중해 연안 주민들이 즐겨먹는 지중해식 식단은 육류를 최대한 배제하고 신선한 채소, 과일, 견과류와 올리브유 같은 식물성 지방, 생선 등으로 꾸며져 있어 심혈관질환을 예방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폴란드,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5개국 65~79세 남녀 612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지중해식 식단을 1년 동안 제공하고 다른 집단은 평소와 같은 식사를 하도록 했다. 연구팀은 수시로 신체검사와 인지검사를 실시하는 한편 장내미생물의 종류와 분포를 조사했다.



그 결과 지중해식 식사를 1년 동안 해온 집단은 일반 식사를 한 그룹에 비해 걷기 속도, 손아귀 힘 등 체력과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부는 이전보다 체력이나 인지기능이 더 좋아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 대장암과 지방간, 당뇨를 유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유해 장내미생물은 줄어들고 유익한 장내미생물이 증가했으며 체내 염증지수는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빈곤층에는 유익한 장내미생물 숫자도 적어




빈부격차는 장내미생물의 종류와 분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저소득층이 장내미생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보건정책은 공중보건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미국 오레곤대 내에 있는 생물학 및 환경센터, 클라크오너스 교양대학, 인간생리학과, 경영대학원,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스쿨, 조경건축학과, 교육대 상담 심리학 및 복지학과, 생태·진화연구소 공동연구팀은 빈곤층의 장내미생물은 숫자와 종류가 턱없이 적고 유익한 장내미생물도 많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공공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로스 생물학’에 지난해 11월 말 실렸다.



연구팀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중산층 이상과 빈곤층의 장내미생물 종류와 숫자를 비교해본 결과 빈곤층의 장내미생물 균총의 종류와 숫자가 눈에 띄게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유익한 장내미생물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런 유익한 장내미생물의 부족 때문에 비만과 관련한 대사질환, 우울증과 알콜중독,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에 취약하게 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사회경제적 불균형이 건강의 불균형과 격차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의 산전, 산후관리를 통해 산모들부터 유익한 장내미생물을 확보하도록 하고 이것이 영유아들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학교 급식에서 균형잡힌 식단을 제공하고 학내에 정크푸드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장내미생물은 인류와 함께 ‘공진화’해 왔다. 장내미생물 연구를 통해 인류의 진화과정을 파악할 수도 있다. ⓒGUT



수잔 이스햅 메인대 교수(동물학·수의과학)는 “유익한 장내미생물에 대한 접근은 개인은 물론 공중보건차원에서 중요한 인간의 권리라고 봐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라며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은 호혜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균형이나 건강권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응용생태학과, 노스웨스턴대 인류학과, 노트르담대 생명과학과,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장내미생물 덕분이라는 연구결과를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생태와 진화의 최전선’(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 2월 19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장내미생물’ 전성시대가 됐다.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