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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있기만 해도 건강 체크해주는 스마트 변기
2020.04.17


조선시대 임금은 매화틀이라는 휴대용 변기에 용변을 보고 내의원 어의들이 색깔과 모양을 보고 임금의 건강을 확인했다. 영화 ‘광해’에서 임금이 된 광대가 매화틀에 앉아서 용변을 보는 모습이다. ⓒ광해 캡처



#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 루이14세가 완성한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한 건물 내부와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화려함을 앞세운 베르사유 궁전의 이런 이면에는 황당한 설계가 있었다. 배설을 위한 화장실은 궁전의 아름다움을 해친다고 해서 화장실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귀족과 심지어 건축을 지시한 왕마저도 정원 곳곳에서 볼 일을 봐 궁전의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귀족 여성들에게서 치마 아랫단이 풍성한 드레스가 유행한 것도 치마 안쪽에 개인용 변기를 달고 다니기 위해서였고 프랑스에서 향수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



# 서울에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많은 궁들이 있다. 과연 한국의 궁들에도 베르사유 궁전처럼 화장실이 없었을까. 이전까지는 한국의 궁에도 화장실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발굴로 조선시대 본궁이었던 경복궁에만도 30여 개에 가까운 화장실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단, 왕조시대 지존이었던 임금을 위한 화장실은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요즘도 각국 정상들의 건강 정보는 국가기밀에 해당되었는데 당시에도 정적들에게 왕의 건강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임금 전용 화장실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금은 어떻게 볼일을 봤을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극들을 보면 임금이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면 상궁이나 내시들이 휴대용 변기인 ‘매화틀’(또는 매우틀)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임금이 용변을 보면 내의원 소속 의관들이 매화틀에 담긴 내용물의 색과 농도를 보고 건강을 파악했다. 심지어는 맛까지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초적 이야기들이지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먹고 잘 싸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변비는 투입만 있고 산출이 없기 때문에 어찌 보면 심각한 건강상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결과로 나오는 소변과 대변은 건강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실제로 누구나 한 번쯤 받아봤을 건강검진도 생각해보면 혈액검사와 소변, 대변 검사에서 대부분의 결과를 산출해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먹고 잘 소화시키고 배출시키는 것이다. 한국인 과학자들이 용변을 실시간 측정해 건강여부를 알려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픽사베이



SF나 사물인터넷(IoT)의 미래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스마트 화장실이다. 그런 것들에서 나오는 스마트 화장실은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간단한 건강검진을 해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인 과학자들 주도로 매일 아침 화장실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여러 종류의 건강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현대판 매화틀인 스마트 변기가 개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 의대, 전기공학과, 케이스 웨스턴리저브대 의대, 한국 서울 송도병원 외과, 암면역센터, 포스텍 창의IT융합학부, 가톨릭대 의대, 캐나다 토론토대 의대, 네덜란드 라이덴대 의대 공동연구팀은 매일 개인의 건강상태를 반복적으로 측정해 질병을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스마트 변기’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의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 4월 7일자에 실렸다. 이번 연구에는 박승민 스탠포드대 의대 영상의학과 수석연구원 박승민 박사와 송도병원 원대연 외과과장이 제1저자로 참여하고 다수의 포스텍, 가톨릭대 의대 소속 과학자들이 함께 했다.




▲스마트 변기 연구진은 이전에 있는 기술들을 융합시켜 새로운 기능을 가진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픽사베이



이번에 개발된 스마트 변기는 비데처럼 기존 변기 위에 얹히는 것만으로도 대변과 소변에서 파악될 수 있는 다양한 질병표지자를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를 위해 압력 및 동작센서, 소변의 흐름과 속도, 소변 속 생화학적 성분분석이 가능한 탐침, 변의 색과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카메라와 시각 인공지능(AI), 변기 뚜껑과 물을 내리는 레버에 장착된 손가락 인식장치 등이 설치됐으며 이들 정보를 컴퓨터로 전송할 수 있는 정보전송기술과 AI 기계학습 알고리즘까지 적용했다.



연구팀은 장 건강 확인에 사용되는 ‘브리스톨 분류표’에 따라 대변을 7가지로 분류하고 3000여 장의 대변 관련 사진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변실금, 배변장애, 항문출혈 등 대장항문질환, 염증성 장질환,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발견할 수 있다. 압력센서로는 변기에 앉은 시간과 배변시간을 측정해 배변 습관도 파악할 수 있다.





▲현대판 매화틀 ‘스마트 변기’의 모식도. 인공지능과 각종 센서로 변의 모양과 형태, 성분을 파악해 즉시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현대식 매화틀이 개발됐다.ⓒ네이처 바이오메디컬엔지니어링 제공



또 연구팀은 별도의 개인 확인절차 없이 누구의 대소변인지 추적·관리할 수 있도록 항문의 35~37개의 주름이 만들어 내는 패턴을 인식할 수 있는 스캐너를 장착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30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 변기를 6~7개월 정도 사용하도록 한 뒤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52%가 ‘사용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편하다’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이용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민감한 개인정보이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관련 정보가 클라우드 시스템에 바로 전송되고 말단 장비에는 저장되지 않도록 해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기술은 개인 프라이버시 때문에 남성용으로 개발됐다.



이번 기술이 놀라운 것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결합시켜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