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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코로나19 대응 R&D 긴 안목으로 지금 시작해야”
2020.04.17


┃손웅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부원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제2 코로나19 사태'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출연연구기관이 해야 하고 잘 하는 연구 과제를 지금부터 기획해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이달 10일 경기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융합기술연구소에서 만난 손웅희 부원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또다시 발생하더라도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과제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본격적으로 발발하면서 마스크를 찾는 수요가 크게 늘어나 전국적으로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국내 마스크 생산 기업들이 생산 확대에 나섰지만 급증한 국내외 수요를 따라가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가운데 생기원은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스크 생산에 필요한 MB(Melt-blown) 필터 양산에 착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의 협의를 통해 연구용으로 보유중인 MB 필터 파일럿 설비를 양산 시설로 전환해 MB 필터 물량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생기원이 보유한 MB 필터 파일럿 설비는 KF80 등급 마스크 제작하는 데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손 부원장은 “며칠간 파일럿 설비를 활용한 MB 필터 양산과 공급 가능성을 타진했고 모자라는 마스크 부족분만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며 "지금도 파일럿 설비를 밤새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기원이 MB 필터 공급에 소매를 걷어부치면서 소규모지만 필요한 곳에 마스크 공급이 가능해지고 있다. 생기원은 최근 필터 308kg을 생산하고 이를 활용해 제작한 보건용 마스크 15만장을 지난 3월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공했으며 이는 4월 15일 총선에 사용됐다. 손 부원장은 “설비가 안정화되면서 1주일에 필터 약 300kg를 제작할 수 있는데 보건복지부 요청으로 현재 필터를 제작하고 있다"며 "4월 중 1,200kg의 필터를 생산해 시장에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손 부원장은 마스크 필터 외에도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사태에 대응할 새 연구 아이디어나 기획과제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급작스럽게 사태가 발생하면 그만큼 대응이 늦어지기 때문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앞장서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 부원장은 생기원의 나노촉매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항바이러스 스프레이를 제작하는 연구나 항균 특성이 좋은 구리로 병원 침대나 의료장비에 쓰이는 스테인리스스틸을 대체하는 연구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바이러스나 화학 사고가 발생했을 때 옷에 부착된 센서로 이를 인식하는 재난 대응형 스마트 방호복도 생기원이 추진할 만한 연구 주제다. 

손 부원장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제조업 기반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생기원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 부원장은 “최근 제조업의 화두였던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 팩토리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로 제조업 생태계 자체가 바뀌어나갈 가능성이 있다”며 “중소·중견기업과 제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읽고 난국을 헤쳐갈 제품과 기술을 확보해 시장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손 부원장과의 일문일답. 


Q. MB 필터를 공급하기로 한 계기는.

“MB 필터 제작에 사용하는 파일럿 장비는 15년 전에 산업통상자원부 기반구축사업의 일환으로 구축한 연구용 장비다. 산업용 섬유를 생산하도록 제작됐다. 정부출연연구기관과 과학기술계는 코로나19와 같은 사태에 대응하는 준비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기원이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을 살펴봤다. 연구용 장비이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뜻을 모았다. 이미 진행되는 연구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기면 안된다는 이견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코로나19와 같은 긴급한 현안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어찌 보면 기회일 수도 있다. 15년 된 장비를 새롭게 구축해야 필요성이 생겼다. 관련 연구과제를 통해 산업용 필터, 마스크, 방호복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양산할 연구과제 기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Q.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사태에 도움을 줄만한 장기적인 연구 아이디어나 계획은 어떤 것이 있나.

“생기원 입장에서는 기계, 섬유, 고분자, 화학, 로봇, 융합 분야에서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사람 손이 자주 닿는 손잡이들을 항균 처리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 스프레이나 항균 특성이 있는 동으로 의료장비 등에 쓰이는 스테인리스스틸을 대체하는 연구, 바이러스나 유해 화학물질을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센서가 부착된 재난 대응형 스마트 방호복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감염병 대처에는 백신 개발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대량 생산하기가 쉽지 않다. 생기원은 식품 세포를 배양해 추출하는 배양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플랜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면 식물 기반 백신 개발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바이러스 집단 감염 지역에 바이러스의 농도와 전파를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 로봇 기술도 향후 연구할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Q.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에 처해진 중소·중견기업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 


“생기원은 분석 장비, 테스트 장비를 활용해 중소·중견기업들의 제품과 기술을 시험·평가한다. 현재 시험 분석비나 장비사용료, 자문료를 정부 정책에 맞춰 최대 50% 감면해 주고 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주문(오더)’이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곧바로 좋아지긴 하겠지만 분명히 예전과는 다른 상황이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일상생활에서 택배나 배송 시장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제조업에서도 필요한 물품을 수급하고 제공하는 생태계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각 대기업들은 재료나 물품을 공급받는 방안에 변화를 줄 것이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할 것이다. 이런 환경 변화에 중소·중견기업이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Q. 제품과 기술, 마켓 변화에 따른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과학기술 관련 지원 정책을 공급자의 의지가 아닌 수요자인 기업 입장에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제조업은 양적 팽창을 지속해왔다. 앞으로는 다함께 양적으로 팽창하는 게 아니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변신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제조 기술과 제품 플랫폼을 보유한 플레이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생산기지가 될 것인지, 하청으로 계속 남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예전에는 기술에 앞선 국가들을 빠르게 추격하면 됐다. 타깃이 고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타깃이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시대이다. 흐름을 빠르게 읽고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지를 파악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