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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읽기의 과학
2020.05.18


ⓒ픽사베이




“좋은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새 친구를 얻은 것과 같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옛날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다.”



“가장 훌륭한 벗은 가장 좋은 책이다.”



18세기 영국의 극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영국 정치가이자 문필가인 필립 체스터필드가 독서에 관해 남긴 말들이다. 예전에는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독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 책읽기는 취미 축에도 끼지 못한다. 독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취미가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독서 대신 컴퓨터나 모바일 게임이 대체하고 있어서다.


얼마 전부터 생활방역으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지난해 말 코로나19가 시작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강도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독서 인구가 다소 늘었다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른 취미거리들에 책 읽기는 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화사적 관점에서 독서는 1440년대 독일 인쇄공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대량으로 싼 값에 찍어낼 수 있게 된 ‘인쇄술 혁명’ 이후 시작됐다. 이렇듯 ‘책 읽기’는 5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발명품이다. 뇌에서 문자를 읽고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 따로 형성될 정도로 뇌는 진화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뇌 차원에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행위이고 그 과정에서 뇌의 여러 부위를 자극해 발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학이나 학습심리학 차원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구들이 많이 나왔다. 최근에는 독서의 유용성에 대한 뇌신경과학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책 안 읽을수록 읽기 힘들어진다



미국 신시내티 아동병원, 하버드대 의대, 독일 막스플랑크 인지및뇌과학연구소, 핀란드 이위베스퀼레대,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루벤대,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동연구팀은 책을 멀리 할수록 점점 글자 읽기를 어려워하게 되고 읽은 다음에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뇌가 변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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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메타분석을 통해 전 세계 어린이의 5~10% 정도가 난독증을 앓고 있으며 책 읽기를 어려워하거나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난독증 유사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지난 5월 2~5일 온라인으로 열린 미국 인지신경과학회(CNS) 2020년 연례컨퍼런스의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읽기 능력 개발’ 분과에서 발표됐다.



연구팀은 140명의 5~6세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도록 하면서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했는데 난독증상을 보이는 아이들과 일반 아이들의 뇌 구조와 뇌신경 연결형태가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 또 스마트폰을 포함해 영상 매체에 자주 노출돼 독서를 멀리하는 아이들 뇌 구조는 난독증을 가진 아이들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장기 추적조사를 통해 난독증이 있거나 책을 읽고도 문장이나 내용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지속적으로 책을 읽도록 하면 난독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독서는 시각기억력도 높여준다


네덜란드 막스플랑크 심리언어학연구소, 라드바우드대, 스위스 취리히대, 인도 의생명연구센터, 하이데라바드대, 알라하바드대, 이쉬어 사란 디그리대 소속 신경언어학자와 뇌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독서가 ‘시각단어형태영역’(VWFA)이라는 뇌 부위를 자극함으로써 시각 인지, 시각기억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2019년 9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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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러크나우 인근 마을 2곳을 골라 23~39세의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만 글을 알지 못하는 남녀 29명을 선발해 6개월 동안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글을 가르치는 동안 연구팀은 주기적으로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해 참가자들의 뇌 기능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문맹이었던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면서 뇌의 VWFA 부위 뿐만 아니라 시각 관련 부위가 활성화되면서 글자가 아닌 얼굴이나 사물, 각종 문자 형태 등을 더 잘 기억하고 구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확인했다. 읽기가 시각 뇌의 반응을 더 민감하게 만들어 시각체계 전반은 물론 기억력과 인지능력을 높이는데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 아니 독서순!



독일 튀빙겐대, 미국 휴스턴대, 일리노이 어바나-샴페인대 공동연구팀은 당장의 성적보다는 읽고 쓰는 능력이 우수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대인관계가 원만한 학생들이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2018년 9월 국제학술지 ‘성격과 사회심리학’에 발표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학교 성적이나 지능지수(IQ), 부모의 경제적 지위 등은 장기적 행복과 성공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낮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독서순’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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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사회과학 분야 최대 연구기관인 미국연구원(AIR)의 장기 분석 데이터를 활용해 1960년에 9~12학년(한국 중3~고3) 학생 34만 6660명의 학교 생활기록부를 분석하고 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 11년과 50년 뒤의 직업과 사회 및 경제적 지위를 추적조사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부모와 학생의 지능지수, 성격, 학생들의 책임감 정도, 학교에 대한 관심, 글쓰기, 읽기 등 각종 수학능력이 직업적 성공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고 책임감이 강하거나 독서를 많이 하고 글을 잘 쓰는 학생들이 단순히 성적만 좋거나 지능지수가 높은 학생들보다 직업적 성공은 물론 높은 소득 수준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코로나19가 여전한 요즘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 집어들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